글 = 신지현(아이 식습관 개선과 자기계발에 힘쓰는 두 아이의 엄마)
주말 아침, 평소와 달리 기운 없이 널브러져 있던 첫째 딸이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전날 입힌 실내복 상의가 짧았는데 혹시 밤새 옷이 올라가 배가 차가웠던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머리를 굴려보는 사이 아이는 한 번 더 토했고, 일단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선 장염보다는 그냥 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힘없이 다시 침대에 누운 딸을 보며 문득 전날 저녁 식사가 떠올랐다.
애써 준비한 자장덮밥이 영 맘에 안 드는지 동생이 한 그릇을 비울 동안 두세 숟갈 깨작이던 모습. 여느 때처럼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보려 애썼지만 결국 반 이상 남은 식사.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깨작깨작 먹기 싫어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했던 나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당연하게도 죄책감 또한 들기 시작했다.
나만 이렇게 육아가 어려운 것일까?
나 딴에는 아이를 위한다고 내린 결정과 그에 따라 옮긴 행동이 때론 썩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 때가 있다. 육아를 성적으로 매긴다면 아마 나는 B학점도 되지 못할 것만 같다.
정말 잘 하고 싶은데. 다른 것도 아닌 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만은 항상 오답보다는 정답을 선택하고 싶은데. 아무리 검색하고 찾아보고 공부해도 매번 내 상황에서 무엇이 흠결 없는 정답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물론 늘 완벽할 수만은 없겠지만 이렇게 한 번씩 오답으로 인한 파고가 세게 나를 치고 지나갈 때면 그냥 다 내려놓고 누군가 알려주는 정답, 누군가 대신 내려주는 결정에 묻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흔히들 말한다. 육아엔 정답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면서도 ‘당신의 육아 방식은 틀렸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들은 우리를 자꾸 움츠리게 한다. 사실 원랜 정답이 있었던 것만 같고, 나만 그걸 몰랐던가 싶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입이 짧은 데다 식사 시간에 관심도, 흥미도 없는 7살 딸. 처음엔 친구들과 2~3kg 차이 나던 몸무게가 이제 6kg 이상 벌어져 버린 현실 속에서 과연 그날 내가 어떻게 했어야 정답에 가장 근접한 행동이었을까.
먹기 싫다는 아이의 뜻을 존중해 서너 숟갈밖에 먹지 않은 밥을 그냥 남기고 식사를 마치도록 놔둬야 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애썼던 내 선택이 그럼에도 조금은 정답에 가까웠었을까?
다행히 딸은 금세 좋아져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래도 여전히 입맛이 덜 돌아온 듯해 걱정되던 찰나 동생이 엄마를 졸라 사들고 온 달고나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이틀 동안 미안하고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기분이었다.
글 = 신지현
잘 먹지 않는 아기,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작은 아기를 키우고 있다. 평범한 엄마로서 아이를 잘 먹이기 위한 뾰족한 묘책은 없지만 아이의 식습관 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